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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학 공부

3. 세계의 재배의 발달

by 잡학농부 2022. 8. 1.

재배학 공부 편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세계의 재배의 발달' 입니다.

 

<<목차>>

     


    세계적인 재배의 발달

    세계의 재배의 발달

    세계적인 재배의 발달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작물의 개량

    식물에도 암수의 구별이 있다는 것이 1694년 R.J. 카메라리우스(R.J. CAMERARIUS)에 의하여 처음 밝혀진 후, 1761년 J.G. 쾰로이터(J.G. KOELREUTER)는 ‘식물의 성(암수 구별)에 관한 실험과 관찰’을 출간하고 교잡(개통, 품종, 성질이 다른 암수의 교배)에 의하여 개체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작물의 개량은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한 C.R. 다윈(C.R. DARWIN)의 ‘진화론’이 나온 이후 발전하였다. 진화론에서는 획득형질(생물이 후천적인 환경 요인이나 훈련에 의하여 변화한 성질)이 유전한다고 보았으나, 바이스만(WEISMANN)은 1886년 획득형질이 유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용불용설(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세대를 거듭함에 따라서 잘 발달하며, 그러지 못한 기관은 점점 퇴화하여 소실되어 간다는 학설. 1809년에 라마르크가 제창하였으며 이러한 발달과 미발달은 자손에게 유전한다고 하였음)을 부정하였다.

    G.J. 멘델(G.J. MENDEL)은 완두의 교잡실험 결과를 1865년 ‘멘델의 유전법칙’으로 발표하여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요한센(JOHANNSEN)은 1903년 ‘순계설’(집단이 여러 종의 순계의 혼합이면, 선택으로 변이를 일정한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 있으나, 순계가 되어 버리면 선택은 되지 않고, 환경의 영향에 의한 변이만 남는다는 학설. 덴마크의 유전학자 요한센이 제창)을 발표하여 자식성(암술이 같은 그루 안의 꽃으로부터 꽃가루를 받아 수정이 이루어지는 식물. 일반적으로 자연 교잡율이 4% 이하인 것을 이른다. 토마토, 가지, 고추, 갓, 복숭아, 포도 따위가 있음) 작물의 품종개량에 이바지하였다.

    J. 드 브리스(J. DE VRIES)는 1901년 달맞이꽃 연구에서 돌연변이를 발견하고 ‘돌연변이설’을 발표하여 품종개량에 기여하였다. T.H. 모건(T.H. MORGAN)은 1908년 초파리 실험으로 반성유전(성염색체에 있는 유전자가 지배하는 유전. 유전 현상이 특정한 성과 연관되어 나타나는데 색맹이나 혈우병 따위에서 볼 수 있다. X연관 유전과 Y연관 유전이 있음)을 발견하는 등 유전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뮐러(MULLER)가 1927년 X선으로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을 발견한 이래 인위돌연변이에 대한 연구가 크게 진전되었다. 현재는 방사선으로 돌연변이를 유발해 품종을 개량하고 있다.

    1907년 개구리의 신경조직 배양이 최초로 성공하고 식물의 조직배양에도 성공하면서 바이러스 병에 감염되지 않은 새로운 식물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또 1970년대에 들어 유전공학이 발달하면서 내병충 형질전환 품종의 개발이 급진전 되었다.

     


     

    작물 보호

    농경이 시작된 이후 재배가 지속되면서 병해충이 늘어갔다. 농부들은 작물을 윤작(같은 땅에 여러 가지 농작물을 해마다 바꾸어 심는 일)하거나 수확 후 식물체 잔해를 제거하거나 태우면 병해충이 억제된다는 것을 알았다. 잡초는 손으로 뽑거나 또는 김을 매거나 경운(논밭을 갈고 김을 맴)하여 제거하였고, 해충은 손으로 제거하였다. 이와 같은 방제법은 18세기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소금, 비누, 재 등으로 잡초 제거를 시도하고 제충국이나 비소(금속광택이 나는 결정성의 비금속 원소. 회색, 황색, 흑색의 세 가지 동소체가 있음. 환원성이 강하고 불안정하여 빛이나 열을 받으면 잿빛으로 변하고, 공기 속에서 태우면 삼산화 이비소가 됨. 자연적으로는 황이나 금속과 결합한 상태로 존재하며, 그 화합물은 독성이 있음. 농약이나 의약의 원료로 씀)로 해충을 억제하고자 노력하였으나 국지적이고 소규모 적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무기물 등 천연산물을 농약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감귤깍지벌레 구제를 위한 살충제로 석유유제(1815) 및 비소제 농약(1820)이 개발되었다. 살균제로 유황계 농약(1848), 석유유황합제(1880), 석회보르도액(1885)이 사용되었다. 천연산물로 담배, 제충국, 데리스 뿌리 등이 살충제로 이용되었다.

    A. 판 레이우엔훅(A. VAN LEEUWENHOEK)이 1660년에 현미경을 발명하였고 이것으로 1675년에 박테리아를 발견하여 미생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1846년에는 감자의 부패가 곰팡이에 의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862년에는 L. 파스퇴르(L. PASTEUR)가 미생물 발생 실험을 통하여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고 ‘병원균설’을 제창한 이후 식물 병의 과학적 방제가 시작되었다.

    20세기에는 많은 수의 각종 화학물질이 합성되어 농약으로 사용되는 유기합성농약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유기수은 등의 농약을 수입하여 사용하다가 1970년대부터 국내에서 생산한 살충제, 살균제 및 제초제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1872년 이전에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들어온 깍지벌레가 감귤지대에 만연하여 피해가 컸다. 그러나 깍지벌레의 원산지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피해가 크지 않은 것에 주목하여 곤충학자에게 연구하게 한 결과 천적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천적인 됫박벌레를 1888년에 도입하고 방사하여 2년 만에 깍지벌레가 방제되었는데 이는 해충을 생물학적으로 방제한 최초의 예이다.

    동식물의 병이 곤충에 의하여 매개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방역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었다. 소의 가축열 병은 진드기에 의해 매개되는 원생동물이 혈액 속에 기생하기 때문임이 1891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1891년에는 배(배나무의 열매)의 화상병이 벌에 의하여 매개되는 것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작물의 병이나 해충 저항성에 품종 간 차이가 있음이 알려지면서 내병성이나 내충성 품종이 육성되어 작물보호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잡초 방제

    인류가 정착 농경을 시작한 이래 작물의 재배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 다른 재배 기술은 크게 발전했어도 제초만은 여전히 인력에 의존하였다. 그런데 1941년 미국의 포코니(POKORNY)가 최초의 화학적 제초제로 ‘2,4-D’(DICHLOROPHENOXYACETIC ACID, 제초제)를 합성하면서 화학 약제에 의한 제초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1970년대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제초제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농민들은 수천년간 고생하던 제초의 중노동에서 해방되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제초제에 유전적으로 저항성을 나타내는 잡초가 증가하여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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